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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독일 역사 GERMANY #02

by 여행하는캠퍼하루피 2023.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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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1648년 30년 전쟁

개신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구교와 신교의 대립은 여전히 격렬하였다. 결국 1618년 양 세력의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를 빌미로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등 인접한 외세가 신성로마제국을 침공하여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되고 만다. 1648년 양 세력은 뮌스터의 구시청사와 오스나브뤼크의 시청사에서 두 번의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하여 전쟁을 끝냈다. 이로 인해 구교와 신교 모두 동등한 지위를 얻게 되었으나 비스마르나 슈트랄준트 등 여러 도시가 외세 참전국의 영토로 편입되고 만다. 하이델베르크 성이나 로텐부르크의 의회연회당 등 30년 전쟁과 관련된 장소도 많다.

1710년 프로이센 왕국의 성립

대공이 다스리는 지방 분권 국가의 모임인 신성로마제국에서 첫 왕국이 등장한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에 참전하는 조건으로 프로이센 공국이 왕국으로 승격되었다. 프로이센은 30년 전쟁으로 농토가 황폐화되고 농업 인력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이고 상업을 융성하여 크게 발전하였다. 특히 군사력을 크게 늘려 주변열강에 뒤지지 않는 신흥세력으로 떠올랐다.

 

1740년 프리드리히 대왕 즉위

프로이센 왕국의 세 번째 왕으로 프리드리히 대왕(프리드리히 2세)이 즉위하였다. 그는 신성로마제국을 사실상 리드하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에 맞서 두 차례 전쟁에서 모두 승리하였고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은 그가 남긴 역작이다.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법전도 편찬하였다.

1758년 바이마르 고전주의의 태동

바이마르 공국의 대공 카를 아우구스트가 너무 어린 나이에 취임하자 그의 어머니인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가 섭정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괴테, 쉴러, 헤르더 등 당대 최고의 석학을 초빙하여 바이마르에 머물게 하면서 아낌없이 지원하였다. 바이마르의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국립 괴테 박물관 등이 모두 당시의 유산이다. 이들에 의해 바이마르에서 고전주의가 완성되었고, 이 정신이 계승되어 근대 독일이 탄생하였다.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에서 10년간 재상으로서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다.

1792년 프랑스혁명전쟁

나폴레옹이 유럽 전체의 판도를 뒤흔들었을 뿐 아니라 혁명 정신이 전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1806년 신성로마제국의 멸망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독일 남서부는 나폴레옹의 수중에 들어가고 사실상 독일 전역이 그의 영향권에 놓인다. 나폴레옹은 라인동맹을 만들어 그에 속한 지방 국가들이 신성로마제국에서 탈퇴하도록 하였고, 결국 라인동맹 출범 1개월 만에 마지막 황제 프란츠 2세가 퇴임하면서 신성 로마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라인동맹은 1815년까지 지속되었고, 이에 가담하지 않은 바이에른 등 일부 국가는 왕국을 선포한다.

1808년 <파우스트> 1부 발간

괴테 평생의 역작 <파우스트> 1부가 발간되었다. 독일의 전설과 민담을 바탕으로 빼어난 문학성을 자랑하여 독일인들은 <파우스트>와 괴테에게 엄청난 자긍심을 느꼈다. 프랑스혁명정신과 바이마르의 고전주의 등 계몽사상이 퍼| 지면서 막 싹을 틔우던 독일의 민족주의가 지향점을 찾게 되는 순간이다.

1812년 그림 형제 동화집 발간

그림 형제가 전국의 전설과 민담을 모아 동화집을 만들었다. 언어학자였던 그림 형제는 각 지역마다 존재하던 방언의 차이를 동화집 발간을 통해 집대성하였다. 카셀의 그림벨트에 원본이 남아 있다.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등 연합군이 나폴레옹의 숨통을 끊었다. 2차 러시아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은 라이프치히에서 크게 패퇴하였고 실각의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전투 장소에 거대한 기념비가 남아 있다.

1815년 독일연방 결성

나폴레옹 실각 후 그의 꼭두각시 정권인 라인연방도 해체되었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주도로 옛 신성로마제국 영토에 있는 지방 국가들의 연합체인 독일연방이 출범하였다.
연방의 수도는 프랑크푸르트.

1817년 학생운동 전개

라이프치히 전투의 승리는 민족주의를 더욱 고취시켰고, 직접 참전까지 했던 대학생들은 1815년부터 학생운동을 시작하여 통일국가의 수립을 요구하였다. 1817년 바르트 성에서 당시 독일 전체 대학생의 1/8 이상이 참여하여 나폴레옹 법전과 프로이센 법전을 불태우며 대규모집회를 가졌다. 이때 학생들은 흑색, 적색, 금색의 깃발을 흔들었는데 이것이 독일 국기의 모티브가 되었다.

1834년 관세동맹 체결

프로이센의 주도로 독일연방 내의 물자 이동시 모든 관세가 철폐되면서 경제적 통합을 이룬다. 단, 이 과정에서 오스트리아가 배제됨으로써 사실상 독일연방에서 오스트리아가 고립되기 시작하였다.

1845년 <탄호이저> 작곡

19세기 들어 불타오르기 시작한 독일의 민족주의에 기름을 부은 이는 리하르트 바그너다. 특히 그의 역작 <탄호이저>가 대표적이다.

1848년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 소집

1848년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완성되고 유럽 각지에서 번진 혁명의 불길이 독일에서도 타올랐다. 연방의 기능이 정지되고 그해 프랑크푸르트의 파울 교회에서 국민의회가 소집되었다. 각계 지도자들이 참석하여 입헌군주제 헌법을 의결하며 근대화에 한발 더 나아갔지만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반대로 헌법이 채택되지 못하였다. 근대 통일국가수립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던 독일의 혁명은 실패하였다.

19세기 독일의 산업화

산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1835년 뉘른베르크~퓌르트 구간에 기차가 개통하였는데, 뉘른베르크의 철도 박물관은 당시부터 200여 년간 이어지는 철도의 역사를 전시한다. 슈투트가르트의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에는 1883년 만든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가 있다. 특히 산업화를 선도한 것은 프로이센이었다.
이제 독일연방 내에서 더 이상 프로이센의 경쟁자는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1862년 비스마르크 취임

1861년 빌헬름 1세가 프로이센 국왕으로 즉위한 이듬해 '철혈정책'으로 유명한 비스마르크가 재상으로 취임했다. 군사력을 크게 증대함은 물론 러시아와의 외교를 통해 프랑스, 오스트리아를 동시에 견제하였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의 급성장과 군비 확장, 그리고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관세동맹은 독일연방의 또 다른 중심인 오스트리아를 자극했다. 프로이센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다른 지방 국가와 연합하여 오스트리아가 전쟁을 일으켰으나 프로이센이 쉽게 제압하였다. 오스트리아의 항복으로 독일연방도 해체되었고 프로이센이 주도하는 북독일연방이 출범하였다. 독일연방과 달리 독자적인 헌법을 가진 국가의 개념을 갖추었다. 바이에른 등 남부 국가는 참여를 거부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파리 만국박람회 개최와 수에즈 운하 개통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는 프로이센을 이용해 눈엣가시 같은 오스트리아를 제거할 목적으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때 프로이센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의도와 달리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보다 더 강한 존재가 되자 이를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의 선전포고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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